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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새벽 7시 30분의 속삭임

2027년 11월 7일, 서울 동작구 윤민석의 거실.

자리를 옮겨 자보아도 보란듯이 그의 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언제나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분명 꿈속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들~ 아들, 일어나! 출근 해야지. 엄마 용돈 안 줄 거야?"


목소리의 주인은 민석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민석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목소리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아들'이라는 호칭에 담긴 애정 어린 핀잔, 심지어 말끝을 살짝 올리는 억양까지. 흠잡을 곳 없이 모든 게 완벽했다. 그 완벽함은 민석에게 낮 익은 목소리가 오히려 녹음 된 가짜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민석은 침대 옆 탁상에 놓인 AI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팔짱을 끼고 민석에게 말을 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 있었다. 젊음의 나이를 아득히 넘기신 62세의 어머니를, 민석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으로, 27년전 어머니의 젊음 모습 그대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놓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지금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걱정 많고, 잔소리 많고, 그러면서도 무한히 자애로운.


"AI야, 볼륨 좀 줄여."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7시 37분이며, 예상 기상시각보다 7분 늦으셨습니다. 출근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알았다고." 민석은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렸다. "엄마 홀로그램 끄고."


"어머님 모드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어머님께서 직접 녹음하신 메시지가 추가로 17개 더 있습니다."


민석은 잠시 망설였다. 부산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언제 녹음한 건지는 몰라도, 분명 정성스럽게 준비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깨워주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AI가 재현해내는 건 기술적으론 놀랍지만, 감정적으로는 복잡했다.


"나중에 들을게."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무릎이 욱신거렸다.


“어제 저녁 헬스장에서 무리했나? 33살이면 아직 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일어서는 순간 바닥에서 민석의 발을 감싸는 옅은 빛과 함께 바이탈센서가 작동했다.


"생체 신호 체크 완료. 심박수 68, 체온 36.4도, 혈압 상한 120. 모든 수치 정상입니다. 다만, 무릎 관절 부위에 미세한 염증 반응이 감지됩니다. 오늘 하루 격한 운동은 피하시길 권합니다."


민석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헬스장에서 무리를해서 무릅이 시리다고 생각했는데 바이탈 센서는 간단한 스켄만으로도 완벽하게 진단을 내렸다.


"무릅 아픈걸 어떻게 알지?"


"발바닥 압력 분포와 걸음걸이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평소보다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15% 덜 싣고 계시며, 보폭도 1.2cm 줄어들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놀라우면서도 섬뜩했다. 겨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AI가 그의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낸 것이다.

놀라움을 뒤로한 채 민석은 거실 창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거실 창문을 열자 11월 초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서울의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잿빛이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면 하늘이 잠에 들 듯 잿빛 이불을 덥고 그 뒤로 숨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상쾌하다는 듯 다시 그 푸르른 얼굴을 들어낸다. 민석과 서울의 시민에게는 이러한 패턴과 미세먼지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잠시 도시의 풍경에 잠겨 있던 사이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비트코인 0.7% 상승. 현재 5억 1,432만원. 보유 포트폴리오는 안정권입니다. 어제보다 347만원 수익이에요!"


민석의 AI 어시스턴트가 밝은 목소리로 민석을 응원하듯 같이 즐거움을 나누었다. 작년 이맘때, 민석은 8년 동안 타던 자신의 애마를 중고차로 120만원에 팔았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서 모두 아쉬워하며 핀잔을 놓기 일수였다; ‘차가 있어야 편하지 않냐’고. 그렇지만 민석의 계산법은 남들과는 달랐다.

2025년 말 무인택시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개인 차량의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월 주차비 25만원, 보험료 12만원, 기름값 20만원, 정비비까지 합치면 월 70만원이 들었다. 반면 무인택시는 월 40만원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주차 걱정도 없고, 운전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다. 그 당시 1개에 약 1억 5천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은 지금은 약 2억 8천만원을 넘나들었다. 민석의 계산법과 결정은 남들을 앞서 보았고 그로 인해 민석은 단기간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AI 자산관리 서비스의 도움이 컸다. 민석이 맡긴 자산은 AI가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아줬다. 이 덕분 트레이딩을 모르는 민석에게도 투자의 장벽이 낮아졌다.

기쁨과 성취감에 가벼운 마음으로 욕실로 향하는 민석의 눈에 벽에 걸린 거울이 거슬렸다. 민석은 요즘 자신의 계속해서 머리 숱이 줄어들고 자꾸 빠지는 게 고민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전적인 것인지. AI 어시스턴트가 맞춤 제안한 탈모 방지 샴푸를 써보고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을 시작하자 거울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황사 매우 심해요. 미세먼지 172. 마스크 귀찮아도 꼭 착용하시고, 물 섭취량을 평소보다 30% 늘리셔야 해요, 민석씨. 그럼 오늘도 좋은하루~"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와 거울 속 그녀는 지난달부터 구독을 시작한 가상 아이돌 모닝 어시스턴트였다. '채린'이는 가상의 여성 아이돌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백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었다. 달콤하고 친근한 목소리, 적당히 발랄하면서도 세심한 성격. 완벽에 가까운 외모와 지성을 가진 완벽하게 설계된 인공 인격이었다.


"응, 알았어. 고마워."


대답하고 나서 스스로가 우스웠다. AI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자신이.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이런 것조차 자연스러웠다. AI가 너무 인격을 가지고 인간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마치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인공인격조차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면대 거울 한쪽에는 '오늘의 뉴스 요약'이 떠올랐다:


• 중국, AI 인권 감시법 발효…미국 "즉각 대응" 발표

•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화, 한국 기업들 대응 분주

• 스페이스X, 화성 통신 인프라 구축 본격화 선언

• 국내 청년 실업률 7.2% 기록, 정부 "AI 재교육" 정책 발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뉴스들이었다. 기자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지만, 사회부 기자인 민석에게는 너무 큰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주로 구청 브리핑이나 지역 사건 사고를 담당했다. 국제 정세는 정치부나 경제부 선배들의 영역이었다.

양치질을 하면서 뉴스를 쭉 훑어봤다. 요즘 AI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패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잘 이해할 수 없었다. 'AI 인권 감시법'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AI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AI가 인간의 인권을 감시한다는 뜻인가? 제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있던 민석은 머리를 감으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정보들을 누가 큐레이션해서 보여주는 걸까?’


AI가 민석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해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뉴스들. 그런데 정작 민석은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뭘 보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이 먼 것 같았다. 인터넷엔 아득히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TV에서는 수많은 뉴스가 매일 같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AI가 매일 선별해서 보여주는 10개 정도의 기사만 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수백, 수천 개의 뉴스는 어떤 내용일까? 혹시 더 중요한 소식들이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깐이었다. 머리를 감고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민석의 출근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시작한다.

2027년 11월 7일, 서울 동작구 윤민석의 거실.

자리를 옮겨 자보아도 보란듯이 그의 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언제나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분명 꿈속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들~ 아들, 일어나! 출근 해야지. 엄마 용돈 안 줄 거야?"


목소리의 주인은 민석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민석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목소리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아들'이라는 호칭에 담긴 애정 어린 핀잔, 심지어 말끝을 살짝 올리는 억양까지. 흠잡을 곳 없이 모든 게 완벽했다. 그 완벽함은 민석에게 낮 익은 목소리가 오히려 녹음 된 가짜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민석은 침대 옆 탁상에 놓인 AI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팔짱을 끼고 민석에게 말을 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 있었다. 젊음의 나이를 아득히 넘기신 62세의 어머니를, 민석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으로, 27년전 어머니의 젊음 모습 그대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놓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지금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걱정 많고, 잔소리 많고, 그러면서도 무한히 자애로운.


"AI야, 볼륨 좀 줄여."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7시 37분이며, 예상 기상시각보다 7분 늦으셨습니다. 출근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알았다고." 민석은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렸다. "엄마 홀로그램 끄고."


"어머님 모드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어머님께서 직접 녹음하신 메시지가 추가로 17개 더 있습니다."


민석은 잠시 망설였다. 부산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언제 녹음한 건지는 몰라도, 분명 정성스럽게 준비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깨워주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AI가 재현해내는 건 기술적으론 놀랍지만, 감정적으로는 복잡했다.


"나중에 들을게."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무릎이 욱신거렸다.


“어제 저녁 헬스장에서 무리했나? 33살이면 아직 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일어서는 순간 바닥에서 민석의 발을 감싸는 옅은 빛과 함께 바이탈센서가 작동했다.


"생체 신호 체크 완료. 심박수 68, 체온 36.4도, 혈압 상한 120. 모든 수치 정상입니다. 다만, 무릎 관절 부위에 미세한 염증 반응이 감지됩니다. 오늘 하루 격한 운동은 피하시길 권합니다."


민석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헬스장에서 무리를해서 무릅이 시리다고 생각했는데 바이탈 센서는 간단한 스켄만으로도 완벽하게 진단을 내렸다.


"무릅 아픈걸 어떻게 알지?"


"발바닥 압력 분포와 걸음걸이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평소보다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15% 덜 싣고 계시며, 보폭도 1.2cm 줄어들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놀라우면서도 섬뜩했다. 겨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AI가 그의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낸 것이다.

놀라움을 뒤로한 채 민석은 거실 창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거실 창문을 열자 11월 초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서울의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잿빛이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면 하늘이 잠에 들 듯 잿빛 이불을 덥고 그 뒤로 숨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상쾌하다는 듯 다시 그 푸르른 얼굴을 들어낸다. 민석과 서울의 시민에게는 이러한 패턴과 미세먼지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잠시 도시의 풍경에 잠겨 있던 사이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비트코인 0.7% 상승. 현재 5억 1,432만원. 보유 포트폴리오는 안정권입니다. 어제보다 347만원 수익이에요!"


민석의 AI 어시스턴트가 밝은 목소리로 민석을 응원하듯 같이 즐거움을 나누었다. 작년 이맘때, 민석은 8년 동안 타던 자신의 애마를 중고차로 120만원에 팔았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서 모두 아쉬워하며 핀잔을 놓기 일수였다; ‘차가 있어야 편하지 않냐’고. 그렇지만 민석의 계산법은 남들과는 달랐다.

2025년 말 무인택시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개인 차량의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월 주차비 25만원, 보험료 12만원, 기름값 20만원, 정비비까지 합치면 월 70만원이 들었다. 반면 무인택시는 월 40만원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주차 걱정도 없고, 운전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다. 그 당시 1개에 약 1억 5천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은 지금은 약 2억 8천만원을 넘나들었다. 민석의 계산법과 결정은 남들을 앞서 보았고 그로 인해 민석은 단기간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AI 자산관리 서비스의 도움이 컸다. 민석이 맡긴 자산은 AI가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아줬다. 이 덕분 트레이딩을 모르는 민석에게도 투자의 장벽이 낮아졌다.

기쁨과 성취감에 가벼운 마음으로 욕실로 향하는 민석의 눈에 벽에 걸린 거울이 거슬렸다. 민석은 요즘 자신의 계속해서 머리 숱이 줄어들고 자꾸 빠지는 게 고민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전적인 것인지. AI 어시스턴트가 맞춤 제안한 탈모 방지 샴푸를 써보고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을 시작하자 거울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황사 매우 심해요. 미세먼지 172. 마스크 귀찮아도 꼭 착용하시고, 물 섭취량을 평소보다 30% 늘리셔야 해요, 민석씨. 그럼 오늘도 좋은하루~"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와 거울 속 그녀는 지난달부터 구독을 시작한 가상 아이돌 모닝 어시스턴트였다. '채린'이는 가상의 여성 아이돌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백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었다. 달콤하고 친근한 목소리, 적당히 발랄하면서도 세심한 성격. 완벽에 가까운 외모와 지성을 가진 완벽하게 설계된 인공 인격이었다.


"응, 알았어. 고마워."


대답하고 나서 스스로가 우스웠다. AI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자신이.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이런 것조차 자연스러웠다. AI가 너무 인격을 가지고 인간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마치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인공인격조차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면대 거울 한쪽에는 '오늘의 뉴스 요약'이 떠올랐다:


• 중국, AI 인권 감시법 발효…미국 "즉각 대응" 발표

•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화, 한국 기업들 대응 분주

• 스페이스X, 화성 통신 인프라 구축 본격화 선언

• 국내 청년 실업률 7.2% 기록, 정부 "AI 재교육" 정책 발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뉴스들이었다. 기자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지만, 사회부 기자인 민석에게는 너무 큰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주로 구청 브리핑이나 지역 사건 사고를 담당했다. 국제 정세는 정치부나 경제부 선배들의 영역이었다.

양치질을 하면서 뉴스를 쭉 훑어봤다. 요즘 AI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패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잘 이해할 수 없었다. 'AI 인권 감시법'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AI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AI가 인간의 인권을 감시한다는 뜻인가? 제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있던 민석은 머리를 감으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정보들을 누가 큐레이션해서 보여주는 걸까?’


AI가 민석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해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뉴스들. 그런데 정작 민석은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뭘 보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이 먼 것 같았다. 인터넷엔 아득히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TV에서는 수많은 뉴스가 매일 같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AI가 매일 선별해서 보여주는 10개 정도의 기사만 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수백, 수천 개의 뉴스는 어떤 내용일까? 혹시 더 중요한 소식들이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깐이었다. 머리를 감고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민석의 출근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시작한다.

2027년 11월 7일, 서울 동작구 윤민석의 거실.

자리를 옮겨 자보아도 보란듯이 그의 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언제나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분명 꿈속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들~ 아들, 일어나! 출근 해야지. 엄마 용돈 안 줄 거야?"


목소리의 주인은 민석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민석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목소리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아들'이라는 호칭에 담긴 애정 어린 핀잔, 심지어 말끝을 살짝 올리는 억양까지. 흠잡을 곳 없이 모든 게 완벽했다. 그 완벽함은 민석에게 낮 익은 목소리가 오히려 녹음 된 가짜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민석은 침대 옆 탁상에 놓인 AI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팔짱을 끼고 민석에게 말을 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 있었다. 젊음의 나이를 아득히 넘기신 62세의 어머니를, 민석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으로, 27년전 어머니의 젊음 모습 그대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놓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지금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걱정 많고, 잔소리 많고, 그러면서도 무한히 자애로운.


"AI야, 볼륨 좀 줄여."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7시 37분이며, 예상 기상시각보다 7분 늦으셨습니다. 출근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알았다고." 민석은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렸다. "엄마 홀로그램 끄고."


"어머님 모드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어머님께서 직접 녹음하신 메시지가 추가로 17개 더 있습니다."


민석은 잠시 망설였다. 부산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언제 녹음한 건지는 몰라도, 분명 정성스럽게 준비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깨워주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AI가 재현해내는 건 기술적으론 놀랍지만, 감정적으로는 복잡했다.


"나중에 들을게."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무릎이 욱신거렸다.


“어제 저녁 헬스장에서 무리했나? 33살이면 아직 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일어서는 순간 바닥에서 민석의 발을 감싸는 옅은 빛과 함께 바이탈센서가 작동했다.


"생체 신호 체크 완료. 심박수 68, 체온 36.4도, 혈압 상한 120. 모든 수치 정상입니다. 다만, 무릎 관절 부위에 미세한 염증 반응이 감지됩니다. 오늘 하루 격한 운동은 피하시길 권합니다."


민석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헬스장에서 무리를해서 무릅이 시리다고 생각했는데 바이탈 센서는 간단한 스켄만으로도 완벽하게 진단을 내렸다.


"무릅 아픈걸 어떻게 알지?"


"발바닥 압력 분포와 걸음걸이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평소보다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15% 덜 싣고 계시며, 보폭도 1.2cm 줄어들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놀라우면서도 섬뜩했다. 겨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AI가 그의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낸 것이다.

놀라움을 뒤로한 채 민석은 거실 창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거실 창문을 열자 11월 초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서울의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잿빛이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면 하늘이 잠에 들 듯 잿빛 이불을 덥고 그 뒤로 숨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상쾌하다는 듯 다시 그 푸르른 얼굴을 들어낸다. 민석과 서울의 시민에게는 이러한 패턴과 미세먼지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잠시 도시의 풍경에 잠겨 있던 사이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비트코인 0.7% 상승. 현재 5억 1,432만원. 보유 포트폴리오는 안정권입니다. 어제보다 347만원 수익이에요!"


민석의 AI 어시스턴트가 밝은 목소리로 민석을 응원하듯 같이 즐거움을 나누었다. 작년 이맘때, 민석은 8년 동안 타던 자신의 애마를 중고차로 120만원에 팔았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서 모두 아쉬워하며 핀잔을 놓기 일수였다; ‘차가 있어야 편하지 않냐’고. 그렇지만 민석의 계산법은 남들과는 달랐다.

2025년 말 무인택시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개인 차량의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월 주차비 25만원, 보험료 12만원, 기름값 20만원, 정비비까지 합치면 월 70만원이 들었다. 반면 무인택시는 월 40만원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주차 걱정도 없고, 운전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다. 그 당시 1개에 약 1억 5천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은 지금은 약 2억 8천만원을 넘나들었다. 민석의 계산법과 결정은 남들을 앞서 보았고 그로 인해 민석은 단기간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AI 자산관리 서비스의 도움이 컸다. 민석이 맡긴 자산은 AI가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아줬다. 이 덕분 트레이딩을 모르는 민석에게도 투자의 장벽이 낮아졌다.

기쁨과 성취감에 가벼운 마음으로 욕실로 향하는 민석의 눈에 벽에 걸린 거울이 거슬렸다. 민석은 요즘 자신의 계속해서 머리 숱이 줄어들고 자꾸 빠지는 게 고민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전적인 것인지. AI 어시스턴트가 맞춤 제안한 탈모 방지 샴푸를 써보고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을 시작하자 거울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황사 매우 심해요. 미세먼지 172. 마스크 귀찮아도 꼭 착용하시고, 물 섭취량을 평소보다 30% 늘리셔야 해요, 민석씨. 그럼 오늘도 좋은하루~"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와 거울 속 그녀는 지난달부터 구독을 시작한 가상 아이돌 모닝 어시스턴트였다. '채린'이는 가상의 여성 아이돌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백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었다. 달콤하고 친근한 목소리, 적당히 발랄하면서도 세심한 성격. 완벽에 가까운 외모와 지성을 가진 완벽하게 설계된 인공 인격이었다.


"응, 알았어. 고마워."


대답하고 나서 스스로가 우스웠다. AI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자신이.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이런 것조차 자연스러웠다. AI가 너무 인격을 가지고 인간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마치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인공인격조차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면대 거울 한쪽에는 '오늘의 뉴스 요약'이 떠올랐다:


• 중국, AI 인권 감시법 발효…미국 "즉각 대응" 발표

•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화, 한국 기업들 대응 분주

• 스페이스X, 화성 통신 인프라 구축 본격화 선언

• 국내 청년 실업률 7.2% 기록, 정부 "AI 재교육" 정책 발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뉴스들이었다. 기자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지만, 사회부 기자인 민석에게는 너무 큰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주로 구청 브리핑이나 지역 사건 사고를 담당했다. 국제 정세는 정치부나 경제부 선배들의 영역이었다.

양치질을 하면서 뉴스를 쭉 훑어봤다. 요즘 AI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패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잘 이해할 수 없었다. 'AI 인권 감시법'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AI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AI가 인간의 인권을 감시한다는 뜻인가? 제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있던 민석은 머리를 감으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정보들을 누가 큐레이션해서 보여주는 걸까?’


AI가 민석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해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뉴스들. 그런데 정작 민석은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뭘 보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이 먼 것 같았다. 인터넷엔 아득히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TV에서는 수많은 뉴스가 매일 같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AI가 매일 선별해서 보여주는 10개 정도의 기사만 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수백, 수천 개의 뉴스는 어떤 내용일까? 혹시 더 중요한 소식들이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깐이었다. 머리를 감고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민석의 출근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시작한다.

Chapter 2

커피와 알고리즘

욕실에서 나와 출근 준비를 하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냉장고를 여는 순간, AI 어시스턴트의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침은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2026년 논문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심장질환 발병률이 23% 높다고 나왔어요. 관련 논문 요약해 드릴까요?"


"논문은 됐고...뭐 간단한 거 없나?"


"냉장고 스캔을 시작합니다… 냉장고의 재료를 가지고 조식을 해결할 수 있는 조합은 23가지입니다. 이중 대한민국 30대 남성기준으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추천 드릴께요.  계란 4개, 우유 500ml, 토마토 2개, 치즈 3장으로 만드는 간단하고 건강한 계란말이와 토마토 주스 조합을 추천해요. 단백질 12g, 비타민C 45mg, 칼슘 180mg을 섭취할 수 있어 오늘 하루 활기찬 시작을 돕습니다."


냉장고 화면에는 영양소 분석 차트와 함께 예상 조리시간 8분이라는 안내가 떴다. 심지어 요리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해주는 영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 없어."


민석은 우유를 꺼내며 말했다.


"미숫가루나 타 마실게."


"네, 알겠습니다. 미숫가루도 부족하지만 좋은 조식 대체재입니다."


AI 어시스턴트의 대답에는 살짝 실망한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실제로 실망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들리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사용자의 감정을 자극해서 더 건강한 선택을 유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현관으로 향하면서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 충전기, 카메라, 녹음기. 기자의 기본 장비들.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용 장비들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채린’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민석씨~ 오늘도 럭키비키한 하루 되세요!"


‘채린’이의 트레이드마크 인사였다. '럭키비키'라는 조금 유치한 표현이지만, 아침마다 들으니 나름 정감이 갔다. 민석은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복도에서도 이웃집에서 흘러나온 비슷한 멘트의 AI 목소리가 들려왔다. 201호에서는 남성 아이돌 목소리가, 202호에서는 성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자 취향에 맞는 AI 어시스턴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카카오톡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47개. 대부분 단체방 메시지들이었다. 회사 동료들끼리 만든 방, 대학교 동기들 방, 동네 배드민턴 모임 방... 하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았다. 메시지 대부분이 AI가 추천해주는 뉴스 링크를 공유하는 것들이었다. '이 기사 재밌네요',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같은 가벼운 댓글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다시 봤다. 까만 패딩에 청바지, 운동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모습. 특별할 것 없는 외모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평범한 게 때로는 축복이기도 하니까. 아파트 1층에 내려와서 밖으로 나갔다. 11월 초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기 했지만,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면 견딜만했다. 아파트 택시 승강장에는 내가 구독한 택시 서비스에서 보낸 하얀색 무인택시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넓은 뒷좌석과 쾌적한 향기;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부드러운 중년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윤민석님,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지는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교통상황 원활, 예상 도착시간 28분, 예상 요금 23,000원입니다."


민석은 차량에 탑승해 뒷좌석에 앉았다. 시트는 민석의 체형에 맞도록 자동으로 조정을 시작했다. 홍채 인식 센서가 작동하면서 저장 된 민석의 개인 맞춤 환경이 설정됐다. 실내 온도 22도, 습도 32%, 공기청정기 가동.


"안전벨트 착용 확인.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조수석 등받이에 콘솔에서 작은 화면이 켜졌다. 다양한 음료 메뉴가 나타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2,500원, 카페라떼 3,000원, 녹차 1,500원...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자 작은 로봇 팔이 나와서 종이컵을 받쳐주고, 조수석 등받이에 내장된 드링크머신에서 얼음과 커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즉석 원두 커피라니, 세상 참 좋아졌다.’


택시가 출발하면서 민석은 창밖에 도시풍경을 바라보며 사경에 잠겼다. 서울의 아침 풍경, 모두 비슷하게 생긴 무인택시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질서정연하게 달리고 있었다. 간혹 사람이 운전하는 차들도 있었지만, 도로 전체 차량의 70% 정도는 무인차량이었다. 차량이 신호등에서 잠깐 멈췄을 때, 옆 차선의 벤틀리가 눈에 띄었다. 곤색 벤틀리 컨티넨탈 GT. 아마 3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운전석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시 녹색불이 점등되어 차량이 출발하던 찰나 갑자기 그 벤틀리가 방향지시등도 넣지 않고 민석이 탄 택시 앞으로 끼어들었다.


‘우아아아아앙!’


"위험!"


택시가 급제동했다. 민석의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커피가 쏟아졌다. 안전벨트가 바짝 조여지면서 몸을 고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승객님. 예상치 못한 끼어들기로 인해 긴급제동 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지요?"


"괜찮아요."


민석은 쏟아진 커피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지와 신발에 커피가 튀어 엉망이 되었다.


‘하, 산지 얼마 안된 새 신발인데.’


"저 차 번호판 좀 봐주세요."


"해당 차량의 번호판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위조되었거나 가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했다. 번호판을 가리는 건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런데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차가 돌아다닌다고? 벤틀리는 이미 저 멀리 차들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끼어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다른 무인택시들이 모두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비켜주는 바람에 더욱 빨리 멀어져갔다. 그리고 굉음을 내며 약을 올리던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석이 물었다.


"자동으로 교통당국에 신고됐습니다. 하지만 번호판이 확인되지 않아 처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석은 물티슈로 신발을 닦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범한 교통사고 치고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피해망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울에 무법자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인 나를 겨냥할 이유도 없잖아?’


그냥 운전매너 없는 부자일 뿐이다. 차는 다시 원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강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아름다웠다. 강변에는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 민석은 커피 얼룩이 묻은 신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일진이 영 안 좋네."

욕실에서 나와 출근 준비를 하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냉장고를 여는 순간, AI 어시스턴트의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침은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2026년 논문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심장질환 발병률이 23% 높다고 나왔어요. 관련 논문 요약해 드릴까요?"


"논문은 됐고...뭐 간단한 거 없나?"


"냉장고 스캔을 시작합니다… 냉장고의 재료를 가지고 조식을 해결할 수 있는 조합은 23가지입니다. 이중 대한민국 30대 남성기준으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추천 드릴께요.  계란 4개, 우유 500ml, 토마토 2개, 치즈 3장으로 만드는 간단하고 건강한 계란말이와 토마토 주스 조합을 추천해요. 단백질 12g, 비타민C 45mg, 칼슘 180mg을 섭취할 수 있어 오늘 하루 활기찬 시작을 돕습니다."


냉장고 화면에는 영양소 분석 차트와 함께 예상 조리시간 8분이라는 안내가 떴다. 심지어 요리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해주는 영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 없어."


민석은 우유를 꺼내며 말했다.


"미숫가루나 타 마실게."


"네, 알겠습니다. 미숫가루도 부족하지만 좋은 조식 대체재입니다."


AI 어시스턴트의 대답에는 살짝 실망한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실제로 실망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들리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사용자의 감정을 자극해서 더 건강한 선택을 유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현관으로 향하면서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 충전기, 카메라, 녹음기. 기자의 기본 장비들.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용 장비들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채린’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민석씨~ 오늘도 럭키비키한 하루 되세요!"


‘채린’이의 트레이드마크 인사였다. '럭키비키'라는 조금 유치한 표현이지만, 아침마다 들으니 나름 정감이 갔다. 민석은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복도에서도 이웃집에서 흘러나온 비슷한 멘트의 AI 목소리가 들려왔다. 201호에서는 남성 아이돌 목소리가, 202호에서는 성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자 취향에 맞는 AI 어시스턴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카카오톡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47개. 대부분 단체방 메시지들이었다. 회사 동료들끼리 만든 방, 대학교 동기들 방, 동네 배드민턴 모임 방... 하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았다. 메시지 대부분이 AI가 추천해주는 뉴스 링크를 공유하는 것들이었다. '이 기사 재밌네요',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같은 가벼운 댓글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다시 봤다. 까만 패딩에 청바지, 운동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모습. 특별할 것 없는 외모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평범한 게 때로는 축복이기도 하니까. 아파트 1층에 내려와서 밖으로 나갔다. 11월 초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기 했지만,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면 견딜만했다. 아파트 택시 승강장에는 내가 구독한 택시 서비스에서 보낸 하얀색 무인택시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넓은 뒷좌석과 쾌적한 향기;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부드러운 중년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윤민석님,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지는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교통상황 원활, 예상 도착시간 28분, 예상 요금 23,000원입니다."


민석은 차량에 탑승해 뒷좌석에 앉았다. 시트는 민석의 체형에 맞도록 자동으로 조정을 시작했다. 홍채 인식 센서가 작동하면서 저장 된 민석의 개인 맞춤 환경이 설정됐다. 실내 온도 22도, 습도 32%, 공기청정기 가동.


"안전벨트 착용 확인.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조수석 등받이에 콘솔에서 작은 화면이 켜졌다. 다양한 음료 메뉴가 나타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2,500원, 카페라떼 3,000원, 녹차 1,500원...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자 작은 로봇 팔이 나와서 종이컵을 받쳐주고, 조수석 등받이에 내장된 드링크머신에서 얼음과 커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즉석 원두 커피라니, 세상 참 좋아졌다.’


택시가 출발하면서 민석은 창밖에 도시풍경을 바라보며 사경에 잠겼다. 서울의 아침 풍경, 모두 비슷하게 생긴 무인택시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질서정연하게 달리고 있었다. 간혹 사람이 운전하는 차들도 있었지만, 도로 전체 차량의 70% 정도는 무인차량이었다. 차량이 신호등에서 잠깐 멈췄을 때, 옆 차선의 벤틀리가 눈에 띄었다. 곤색 벤틀리 컨티넨탈 GT. 아마 3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운전석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시 녹색불이 점등되어 차량이 출발하던 찰나 갑자기 그 벤틀리가 방향지시등도 넣지 않고 민석이 탄 택시 앞으로 끼어들었다.


‘우아아아아앙!’


"위험!"


택시가 급제동했다. 민석의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커피가 쏟아졌다. 안전벨트가 바짝 조여지면서 몸을 고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승객님. 예상치 못한 끼어들기로 인해 긴급제동 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지요?"


"괜찮아요."


민석은 쏟아진 커피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지와 신발에 커피가 튀어 엉망이 되었다.


‘하, 산지 얼마 안된 새 신발인데.’


"저 차 번호판 좀 봐주세요."


"해당 차량의 번호판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위조되었거나 가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했다. 번호판을 가리는 건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런데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차가 돌아다닌다고? 벤틀리는 이미 저 멀리 차들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끼어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다른 무인택시들이 모두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비켜주는 바람에 더욱 빨리 멀어져갔다. 그리고 굉음을 내며 약을 올리던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석이 물었다.


"자동으로 교통당국에 신고됐습니다. 하지만 번호판이 확인되지 않아 처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석은 물티슈로 신발을 닦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범한 교통사고 치고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피해망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울에 무법자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인 나를 겨냥할 이유도 없잖아?’


그냥 운전매너 없는 부자일 뿐이다. 차는 다시 원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강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아름다웠다. 강변에는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 민석은 커피 얼룩이 묻은 신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일진이 영 안 좋네."

욕실에서 나와 출근 준비를 하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냉장고를 여는 순간, AI 어시스턴트의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침은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2026년 논문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심장질환 발병률이 23% 높다고 나왔어요. 관련 논문 요약해 드릴까요?"


"논문은 됐고...뭐 간단한 거 없나?"


"냉장고 스캔을 시작합니다… 냉장고의 재료를 가지고 조식을 해결할 수 있는 조합은 23가지입니다. 이중 대한민국 30대 남성기준으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추천 드릴께요.  계란 4개, 우유 500ml, 토마토 2개, 치즈 3장으로 만드는 간단하고 건강한 계란말이와 토마토 주스 조합을 추천해요. 단백질 12g, 비타민C 45mg, 칼슘 180mg을 섭취할 수 있어 오늘 하루 활기찬 시작을 돕습니다."


냉장고 화면에는 영양소 분석 차트와 함께 예상 조리시간 8분이라는 안내가 떴다. 심지어 요리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해주는 영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 없어."


민석은 우유를 꺼내며 말했다.


"미숫가루나 타 마실게."


"네, 알겠습니다. 미숫가루도 부족하지만 좋은 조식 대체재입니다."


AI 어시스턴트의 대답에는 살짝 실망한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실제로 실망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들리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사용자의 감정을 자극해서 더 건강한 선택을 유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현관으로 향하면서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 충전기, 카메라, 녹음기. 기자의 기본 장비들.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용 장비들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채린’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민석씨~ 오늘도 럭키비키한 하루 되세요!"


‘채린’이의 트레이드마크 인사였다. '럭키비키'라는 조금 유치한 표현이지만, 아침마다 들으니 나름 정감이 갔다. 민석은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복도에서도 이웃집에서 흘러나온 비슷한 멘트의 AI 목소리가 들려왔다. 201호에서는 남성 아이돌 목소리가, 202호에서는 성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자 취향에 맞는 AI 어시스턴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카카오톡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47개. 대부분 단체방 메시지들이었다. 회사 동료들끼리 만든 방, 대학교 동기들 방, 동네 배드민턴 모임 방... 하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았다. 메시지 대부분이 AI가 추천해주는 뉴스 링크를 공유하는 것들이었다. '이 기사 재밌네요',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같은 가벼운 댓글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다시 봤다. 까만 패딩에 청바지, 운동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모습. 특별할 것 없는 외모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평범한 게 때로는 축복이기도 하니까. 아파트 1층에 내려와서 밖으로 나갔다. 11월 초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기 했지만,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면 견딜만했다. 아파트 택시 승강장에는 내가 구독한 택시 서비스에서 보낸 하얀색 무인택시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넓은 뒷좌석과 쾌적한 향기;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부드러운 중년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윤민석님,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지는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교통상황 원활, 예상 도착시간 28분, 예상 요금 23,000원입니다."


민석은 차량에 탑승해 뒷좌석에 앉았다. 시트는 민석의 체형에 맞도록 자동으로 조정을 시작했다. 홍채 인식 센서가 작동하면서 저장 된 민석의 개인 맞춤 환경이 설정됐다. 실내 온도 22도, 습도 32%, 공기청정기 가동.


"안전벨트 착용 확인.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조수석 등받이에 콘솔에서 작은 화면이 켜졌다. 다양한 음료 메뉴가 나타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2,500원, 카페라떼 3,000원, 녹차 1,500원...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자 작은 로봇 팔이 나와서 종이컵을 받쳐주고, 조수석 등받이에 내장된 드링크머신에서 얼음과 커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즉석 원두 커피라니, 세상 참 좋아졌다.’


택시가 출발하면서 민석은 창밖에 도시풍경을 바라보며 사경에 잠겼다. 서울의 아침 풍경, 모두 비슷하게 생긴 무인택시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질서정연하게 달리고 있었다. 간혹 사람이 운전하는 차들도 있었지만, 도로 전체 차량의 70% 정도는 무인차량이었다. 차량이 신호등에서 잠깐 멈췄을 때, 옆 차선의 벤틀리가 눈에 띄었다. 곤색 벤틀리 컨티넨탈 GT. 아마 3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운전석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시 녹색불이 점등되어 차량이 출발하던 찰나 갑자기 그 벤틀리가 방향지시등도 넣지 않고 민석이 탄 택시 앞으로 끼어들었다.


‘우아아아아앙!’


"위험!"


택시가 급제동했다. 민석의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커피가 쏟아졌다. 안전벨트가 바짝 조여지면서 몸을 고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승객님. 예상치 못한 끼어들기로 인해 긴급제동 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지요?"


"괜찮아요."


민석은 쏟아진 커피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지와 신발에 커피가 튀어 엉망이 되었다.


‘하, 산지 얼마 안된 새 신발인데.’


"저 차 번호판 좀 봐주세요."


"해당 차량의 번호판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위조되었거나 가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했다. 번호판을 가리는 건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런데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차가 돌아다닌다고? 벤틀리는 이미 저 멀리 차들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끼어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다른 무인택시들이 모두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비켜주는 바람에 더욱 빨리 멀어져갔다. 그리고 굉음을 내며 약을 올리던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석이 물었다.


"자동으로 교통당국에 신고됐습니다. 하지만 번호판이 확인되지 않아 처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석은 물티슈로 신발을 닦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범한 교통사고 치고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피해망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울에 무법자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인 나를 겨냥할 이유도 없잖아?’


그냥 운전매너 없는 부자일 뿐이다. 차는 다시 원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강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아름다웠다. 강변에는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 민석은 커피 얼룩이 묻은 신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일진이 영 안 좋네."

Chapter 3

사라진 동료들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길거리에 경찰차 두 대와 경찰관들이 서있었고, 경찰관들이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민석이 택시차량에게 물었다.


"현재 공개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새벽 3시경 이 일대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민석은 궁금해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휴대폰 알림과 함께 요금 23,000원이 민석의 계정에서 자동으로 결제됐다.


“편안한 여정 되셨길 바랍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민석님.”


“네, 수고하세요~”


‘아차, 무인 택시였지’


민석은 의도치 않게 또다른 AI 모델에게 인격체를 주고 있었다. 회사 건물을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회사 내부 메신저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메시지가 적었다. 아직 출근시간이 안 됐지만, 보통 이 시간이면 조간 뉴스 브리핑 준비로 분주한데 오늘은 조용했다.


‘띵, 9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사 자동문에 들어서자 홍채 인식과 함께 문이 열렸다.


“'띵’, 출근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문이 열림과 함께 출근 체크가 완료됐다. 너무나도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하는 인사소리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했다.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많은 빈자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석의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라 평소에도 빈 책상은 몇 개 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많아 보였다.


"어? 승우도 아직 안왔나?"


민석은 경제부 후배 김승우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승우처럼 부지런한 친구가 늦는 날도 있네?’


승우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평소 승우의 책상은 항상 자료들과 정리되다만 파일들로 어수선했는데 말이다. 정치부 박선배도 보이지 않았다. IT 담당 최기자도 없었다.


‘모두 어디 간 걸까?’


민석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컴퓨터를 켜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전체 60여 개 자리 중에 출근한 사람이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일찍 오셨네요, 윤민석 기자님."


민석의 자리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회부 김부장이었다. 50대 중반의 김부장은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기로 유명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는데요?"


김부장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게... 몇몇 기자들이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냈어요. 승우도 그렇고, 박기자도 그렇고."


"갑자기요?"


"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대신 오늘 취재는 좀 바빠질 것 같아요. 민석 기자님이 구청 브리핑 외에 시청 쪽도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승우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개인 사정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요즘 오히려 왠일인지 불이 붙어 AI 관련 기사에 관심이 많다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는데…’


민석은 자리에 짐을 내려두고 커피를 가지러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로 가는 길에 사내 게시판을 확인했다. 새로운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긴급 공지] AI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 변경

  • 즉시시행: 2027.11.07

  • AI 기술, 자동화, 인공지능 관련 모든 기사는 사전 검토 필수

  • 해외 AI 기업 동향, 정부 AI 정책 관련 보도 시 신중을 기할 것

  • 문의: 편집국장실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런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AI는 오히려 요즘 가장 뜨거운 취재 분야 중 하나였는데, 갑자기 왜 제약을 두는 걸까?’


드링크 머신 앞에 서서 홍채 인식을 하니, 친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산미가 은은한 에티오피아 원두를 추천드려요. 평소 선호하시는 산도 레벨이 4단계인 걸 고려해서 특별히 선별했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얼음은 평소처럼 40%로 해드릴까요?"


"네."


커피머신이 작동하는 동안 화면에 뉴스 헤드라인들이 떠올랐다.


• 코스피 개장 직후 거래량 폭주 예상... AI 거래 규제안 발효 첫날

• 정부 "AI 윤리 강화" 방침 발표... 관련 기업들 주가 하락

•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


AI 거래 규제안? 민석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언제 그런 법이 통과됐지?’


민석은 기자로서 이런 중요한 뉴스를 놓쳤다는 게 부끄러웠다.


“‘띠링’ 주문하신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완성되었다, 향이 정말 좋았다. 무인택시에서 사마셨던 심심한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


민석이 감탄하자 드링크 머신이 대답했다.


"기뻐요! 민석님의 미각 데이터를 3개월간 학습해서 최적화한 배합이거든요. 원두 종류, 추출 온도, 물의 경도까지 모두 개인 맞춤형입니다."


‘3개월간 학습?’


민석은 잠깐 생각해봤다. 그동안 자신이 마신 모든 커피의 데이터가 수집되고 분석됐다는 뜻이었다. 언제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심지어 표정 변화까지도 카메라로 관찰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소름끼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AI가 그를 이렇게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는 게. 민석은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민석은 기자 답게 이메일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었다. 업무 관련 메일 몇 개와 스팸메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나 이상한 메일이 있었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는 메일이었다. 제목도 없었다. 다만 첨부파일이 하나 있었다.


‘발신자 없음?’


민석은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전 클릭에 잠시 망설여졌다. 요즘 랜섬웨어나 바이러스 메일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니 이상한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40°27'00"N, 116°34'00"E


GPS 좌표 같았다. 위도와 경도. 그 아래에는 한 줄의 영어 문장이 있었다.


"They are watching. The coffee knows your taste, but do you know theirs?" "그들이 보고 있다. 커피는 당신의 취향을 알지만, 당신은 그들의 취향을 아는가?"


민석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전 AI 커피머신과 나눈 대화를 누군가 듣고 있었다는 뜻인가? 민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좌표를 검색해봤다. 중국 베이징 근처였다. 정확히는 베이징 북쪽 40킬로미터 지점. 위성지도에서는 산간지역으로 나와 있었지만, 상세한 정보는 없었다. 다른 브라우저로도 검색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것 같았다.


‘혹시 중국의 군사시설? 아니면 비밀 연구소?’


민석은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그들이 보고 있다"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가? 왜?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


이때 옆자리에서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민석씨, 뭐 그렇게 진지하게 봐요?"


"아, 그냥... 이상한 스팸메일 하나 왔네요."


"요즘 스팸메일도 정교하잖아요. 조심하세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일을 닫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잠시 후 천장에 스피커에서 사내 방송이 울렸다.


"전 직원께 공지드립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임시 전체회의가 있겠습니다. 편집회의실에서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체회의? 갑자기?’


민석은 다른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 회의까지 10분 남았다. 민석은 메모장과 펜을 들고 편집회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편집회의실로 향하는 길속에서도 민석의 머리속에서는 계속 그 메일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오늘 하루가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길거리에 경찰차 두 대와 경찰관들이 서있었고, 경찰관들이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민석이 택시차량에게 물었다.


"현재 공개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새벽 3시경 이 일대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민석은 궁금해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휴대폰 알림과 함께 요금 23,000원이 민석의 계정에서 자동으로 결제됐다.


“편안한 여정 되셨길 바랍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민석님.”


“네, 수고하세요~”


‘아차, 무인 택시였지’


민석은 의도치 않게 또다른 AI 모델에게 인격체를 주고 있었다. 회사 건물을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회사 내부 메신저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메시지가 적었다. 아직 출근시간이 안 됐지만, 보통 이 시간이면 조간 뉴스 브리핑 준비로 분주한데 오늘은 조용했다.


‘띵, 9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사 자동문에 들어서자 홍채 인식과 함께 문이 열렸다.


“'띵’, 출근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문이 열림과 함께 출근 체크가 완료됐다. 너무나도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하는 인사소리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했다.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많은 빈자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석의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라 평소에도 빈 책상은 몇 개 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많아 보였다.


"어? 승우도 아직 안왔나?"


민석은 경제부 후배 김승우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승우처럼 부지런한 친구가 늦는 날도 있네?’


승우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평소 승우의 책상은 항상 자료들과 정리되다만 파일들로 어수선했는데 말이다. 정치부 박선배도 보이지 않았다. IT 담당 최기자도 없었다.


‘모두 어디 간 걸까?’


민석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컴퓨터를 켜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전체 60여 개 자리 중에 출근한 사람이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일찍 오셨네요, 윤민석 기자님."


민석의 자리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회부 김부장이었다. 50대 중반의 김부장은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기로 유명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는데요?"


김부장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게... 몇몇 기자들이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냈어요. 승우도 그렇고, 박기자도 그렇고."


"갑자기요?"


"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대신 오늘 취재는 좀 바빠질 것 같아요. 민석 기자님이 구청 브리핑 외에 시청 쪽도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승우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개인 사정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요즘 오히려 왠일인지 불이 붙어 AI 관련 기사에 관심이 많다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는데…’


민석은 자리에 짐을 내려두고 커피를 가지러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로 가는 길에 사내 게시판을 확인했다. 새로운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긴급 공지] AI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 변경

  • 즉시시행: 2027.11.07

  • AI 기술, 자동화, 인공지능 관련 모든 기사는 사전 검토 필수

  • 해외 AI 기업 동향, 정부 AI 정책 관련 보도 시 신중을 기할 것

  • 문의: 편집국장실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런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AI는 오히려 요즘 가장 뜨거운 취재 분야 중 하나였는데, 갑자기 왜 제약을 두는 걸까?’


드링크 머신 앞에 서서 홍채 인식을 하니, 친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산미가 은은한 에티오피아 원두를 추천드려요. 평소 선호하시는 산도 레벨이 4단계인 걸 고려해서 특별히 선별했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얼음은 평소처럼 40%로 해드릴까요?"


"네."


커피머신이 작동하는 동안 화면에 뉴스 헤드라인들이 떠올랐다.


• 코스피 개장 직후 거래량 폭주 예상... AI 거래 규제안 발효 첫날

• 정부 "AI 윤리 강화" 방침 발표... 관련 기업들 주가 하락

•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


AI 거래 규제안? 민석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언제 그런 법이 통과됐지?’


민석은 기자로서 이런 중요한 뉴스를 놓쳤다는 게 부끄러웠다.


“‘띠링’ 주문하신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완성되었다, 향이 정말 좋았다. 무인택시에서 사마셨던 심심한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


민석이 감탄하자 드링크 머신이 대답했다.


"기뻐요! 민석님의 미각 데이터를 3개월간 학습해서 최적화한 배합이거든요. 원두 종류, 추출 온도, 물의 경도까지 모두 개인 맞춤형입니다."


‘3개월간 학습?’


민석은 잠깐 생각해봤다. 그동안 자신이 마신 모든 커피의 데이터가 수집되고 분석됐다는 뜻이었다. 언제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심지어 표정 변화까지도 카메라로 관찰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소름끼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AI가 그를 이렇게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는 게. 민석은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민석은 기자 답게 이메일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었다. 업무 관련 메일 몇 개와 스팸메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나 이상한 메일이 있었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는 메일이었다. 제목도 없었다. 다만 첨부파일이 하나 있었다.


‘발신자 없음?’


민석은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전 클릭에 잠시 망설여졌다. 요즘 랜섬웨어나 바이러스 메일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니 이상한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40°27'00"N, 116°34'00"E


GPS 좌표 같았다. 위도와 경도. 그 아래에는 한 줄의 영어 문장이 있었다.


"They are watching. The coffee knows your taste, but do you know theirs?" "그들이 보고 있다. 커피는 당신의 취향을 알지만, 당신은 그들의 취향을 아는가?"


민석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전 AI 커피머신과 나눈 대화를 누군가 듣고 있었다는 뜻인가? 민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좌표를 검색해봤다. 중국 베이징 근처였다. 정확히는 베이징 북쪽 40킬로미터 지점. 위성지도에서는 산간지역으로 나와 있었지만, 상세한 정보는 없었다. 다른 브라우저로도 검색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것 같았다.


‘혹시 중국의 군사시설? 아니면 비밀 연구소?’


민석은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그들이 보고 있다"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가? 왜?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


이때 옆자리에서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민석씨, 뭐 그렇게 진지하게 봐요?"


"아, 그냥... 이상한 스팸메일 하나 왔네요."


"요즘 스팸메일도 정교하잖아요. 조심하세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일을 닫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잠시 후 천장에 스피커에서 사내 방송이 울렸다.


"전 직원께 공지드립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임시 전체회의가 있겠습니다. 편집회의실에서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체회의? 갑자기?’


민석은 다른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 회의까지 10분 남았다. 민석은 메모장과 펜을 들고 편집회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편집회의실로 향하는 길속에서도 민석의 머리속에서는 계속 그 메일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오늘 하루가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길거리에 경찰차 두 대와 경찰관들이 서있었고, 경찰관들이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민석이 택시차량에게 물었다.


"현재 공개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새벽 3시경 이 일대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민석은 궁금해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휴대폰 알림과 함께 요금 23,000원이 민석의 계정에서 자동으로 결제됐다.


“편안한 여정 되셨길 바랍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민석님.”


“네, 수고하세요~”


‘아차, 무인 택시였지’


민석은 의도치 않게 또다른 AI 모델에게 인격체를 주고 있었다. 회사 건물을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회사 내부 메신저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메시지가 적었다. 아직 출근시간이 안 됐지만, 보통 이 시간이면 조간 뉴스 브리핑 준비로 분주한데 오늘은 조용했다.


‘띵, 9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사 자동문에 들어서자 홍채 인식과 함께 문이 열렸다.


“'띵’, 출근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문이 열림과 함께 출근 체크가 완료됐다. 너무나도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하는 인사소리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했다.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많은 빈자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석의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라 평소에도 빈 책상은 몇 개 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많아 보였다.


"어? 승우도 아직 안왔나?"


민석은 경제부 후배 김승우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승우처럼 부지런한 친구가 늦는 날도 있네?’


승우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평소 승우의 책상은 항상 자료들과 정리되다만 파일들로 어수선했는데 말이다. 정치부 박선배도 보이지 않았다. IT 담당 최기자도 없었다.


‘모두 어디 간 걸까?’


민석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컴퓨터를 켜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전체 60여 개 자리 중에 출근한 사람이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일찍 오셨네요, 윤민석 기자님."


민석의 자리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회부 김부장이었다. 50대 중반의 김부장은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기로 유명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는데요?"


김부장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게... 몇몇 기자들이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냈어요. 승우도 그렇고, 박기자도 그렇고."


"갑자기요?"


"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대신 오늘 취재는 좀 바빠질 것 같아요. 민석 기자님이 구청 브리핑 외에 시청 쪽도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승우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개인 사정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요즘 오히려 왠일인지 불이 붙어 AI 관련 기사에 관심이 많다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는데…’


민석은 자리에 짐을 내려두고 커피를 가지러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로 가는 길에 사내 게시판을 확인했다. 새로운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긴급 공지] AI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 변경

  • 즉시시행: 2027.11.07

  • AI 기술, 자동화, 인공지능 관련 모든 기사는 사전 검토 필수

  • 해외 AI 기업 동향, 정부 AI 정책 관련 보도 시 신중을 기할 것

  • 문의: 편집국장실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런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AI는 오히려 요즘 가장 뜨거운 취재 분야 중 하나였는데, 갑자기 왜 제약을 두는 걸까?’


드링크 머신 앞에 서서 홍채 인식을 하니, 친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산미가 은은한 에티오피아 원두를 추천드려요. 평소 선호하시는 산도 레벨이 4단계인 걸 고려해서 특별히 선별했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얼음은 평소처럼 40%로 해드릴까요?"


"네."


커피머신이 작동하는 동안 화면에 뉴스 헤드라인들이 떠올랐다.


• 코스피 개장 직후 거래량 폭주 예상... AI 거래 규제안 발효 첫날

• 정부 "AI 윤리 강화" 방침 발표... 관련 기업들 주가 하락

•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속


AI 거래 규제안? 민석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언제 그런 법이 통과됐지?’


민석은 기자로서 이런 중요한 뉴스를 놓쳤다는 게 부끄러웠다.


“‘띠링’ 주문하신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완성되었다, 향이 정말 좋았다. 무인택시에서 사마셨던 심심한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


민석이 감탄하자 드링크 머신이 대답했다.


"기뻐요! 민석님의 미각 데이터를 3개월간 학습해서 최적화한 배합이거든요. 원두 종류, 추출 온도, 물의 경도까지 모두 개인 맞춤형입니다."


‘3개월간 학습?’


민석은 잠깐 생각해봤다. 그동안 자신이 마신 모든 커피의 데이터가 수집되고 분석됐다는 뜻이었다. 언제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심지어 표정 변화까지도 카메라로 관찰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소름끼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AI가 그를 이렇게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는 게. 민석은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민석은 기자 답게 이메일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었다. 업무 관련 메일 몇 개와 스팸메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나 이상한 메일이 있었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는 메일이었다. 제목도 없었다. 다만 첨부파일이 하나 있었다.


‘발신자 없음?’


민석은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전 클릭에 잠시 망설여졌다. 요즘 랜섬웨어나 바이러스 메일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니 이상한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40°27'00"N, 116°34'00"E


GPS 좌표 같았다. 위도와 경도. 그 아래에는 한 줄의 영어 문장이 있었다.


"They are watching. The coffee knows your taste, but do you know theirs?" "그들이 보고 있다. 커피는 당신의 취향을 알지만, 당신은 그들의 취향을 아는가?"


민석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전 AI 커피머신과 나눈 대화를 누군가 듣고 있었다는 뜻인가? 민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좌표를 검색해봤다. 중국 베이징 근처였다. 정확히는 베이징 북쪽 40킬로미터 지점. 위성지도에서는 산간지역으로 나와 있었지만, 상세한 정보는 없었다. 다른 브라우저로도 검색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것 같았다.


‘혹시 중국의 군사시설? 아니면 비밀 연구소?’


민석은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그들이 보고 있다"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가? 왜?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


이때 옆자리에서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민석씨, 뭐 그렇게 진지하게 봐요?"


"아, 그냥... 이상한 스팸메일 하나 왔네요."


"요즘 스팸메일도 정교하잖아요. 조심하세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일을 닫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잠시 후 천장에 스피커에서 사내 방송이 울렸다.


"전 직원께 공지드립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임시 전체회의가 있겠습니다. 편집회의실에서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체회의? 갑자기?’


민석은 다른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 회의까지 10분 남았다. 민석은 메모장과 펜을 들고 편집회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편집회의실로 향하는 길속에서도 민석의 머리속에서는 계속 그 메일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오늘 하루가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Chapter 4

패턴 427의 징조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편집회의실은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보통 30명 넘게 모이는 전체회의인데, 오늘은 20명 정도만 참석한듯 보였다.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네?’


편집국장인 최민호 국장이 단상에 섰다. 50대 후반의 최국장은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온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다. 눈가에는 피로가 역력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여러분, 급하게 모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국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무거웠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긴장으로 바뀌었다.


"먼저... 몇 분의 동료들이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휴가를 내게 됐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장승우 기자, 박정훈 기자, 최윤석 기자..."


명단을 읽어내리는 최국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최국장의 말에 민석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승우 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까지? 그것도 한꺼번에?’


"부족한 인력은 서로 협력해서 보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국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종이를 든 최국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당분간, AI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부 당국에서 '사회 안정'을 위해 신중한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몇몇 기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정치부 이선배가 손을 들었다.


"국장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음..."


최국장이 또 망설이며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이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 나갔다.


"AI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외국 AI 기업들의 동향, 정부 AI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의 AI 개발 상황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거의 검열 수준 아닌가요?"


사회부 김선배가 반발했다.


"언론의 자유는..."


"김기자님."


최국장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이건 회사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생존?’


민석은 의아했다. 그저 보도 가이드라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점점 더 심연으로 빠져가는 불안한 분위기였다.


"마지막으로..."


최국장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여러분들도 개인적으로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이상한 연락이나 접촉이 있으면 즉시 회사에 보고해주세요."


‘이상한 연락?’


민석은 순간 아침에 받은 그 메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냥 스팸메일일 수도 있는데 괜히 소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나서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승우가 갑자기 왜..., 정부에서 압력을 가한 건가? AI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나?’


민석도 본인의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집중이 잘 안됐다. 불안한 마음에 승우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민석은 불안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업무부터 처리하자고 마음을 먹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오늘 배정되어 담당해야 할 취재가 몇 건 있었다. 서대문구청 브리핑, 마포구 도시계획 설명회, 그리고 부족한 인력 때문에 추가로 맡게 된 서울시청 정례브리핑. 하지만 뉴스 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기사를 발견했다.


[속보] 뉴욕증시 개장 직후 일시 거래 중단... AI 거래 시스템 오류 추정


궁금증에 기사를 클릭해서 읽어보니 기사에 담긴 내용은 더 기괴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7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개장 직후 약 3분간 모든 거래를 일시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NYSE 관계자는 "AI 자동거래 시스템에서 예상치 못한 패턴이 감지돼 안전을 위해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것은 '패턴 427'이라고 명명된 특이한 거래 알고리즘으로, 동시에 수십만 건의 매매 주문이 들어오면서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와 유사한 패턴이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도 같은 시간에 발견됐다는 점이다.


민석의 팔과 목뒤로 소름이 돋았다.


'패턴 427? 아침에 받은 메일의 좌표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뉴스 사이트들도 확인해봤다.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세부 사항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기사는 단순한 시스템 오류라고 했고, 다른 기사는 해킹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기사에서 '패턴 427'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민석은 '패턴 427'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관련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몇 개의 기술 블로그에서 간단히 언급된 게 전부였다.


"패턴 427은 AI가 학습 과정에서 자주 보이는 특이 행동 중 하나다. 보통 AI가 기존의 프로그래밍된 행동 범위를 벗어나려고 할 때 나타난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에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AI가 프로그래밍 범위를 벗어난다? 무슨 뜻일까?’


이때 경제부 한선배가 민석 자리로 와서 말했다.


"민석씨, 혹시 승우한테서 연락 온 거 없어요?"


"아니요, 전화해봤는데 안 받더라고요. 무슨 일 있나요?"


"음... 승우가 며칠 전부터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AI 거래 시스템에서 뭔가 수상한 패턴을 발견했다면서."


민석의 귀가 쫑긋 섰다. 민석은 다급하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패턴요?"


"잘은 모르겠는데, '427'이라는 코드와 관련된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427!’


민석의 심장은 터질 듯 쿵쾅되며 민석의 셔츠 위까지 그 박동이 보일 정도였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두렵고 불안한 기분이 들며 민석은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민석은 코드 427의 의미, 수수께끼의 이메일의 의미, 사라진 후배이자 친구인 승우의 행방을 찾는 것.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민석은 질문을 이어나갔다.


"선배님, 혹시 승우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음...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이게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한선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나추어 속삭였다.


"민석씨, 혹시 승우한테서 뭔가 받은 거 없어요? 자료라든지, 파일이라든지?"


"아니요, 특별히..."


민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받은 그 이상한 메일이 승우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니, 민석은 두려웠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럼... 혹시 연락 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뭔가 이상해요, 이 모든 상황이."


한선배가 가고 나서, 민석은 다시 그 수수깨끼에 가득 쌓인 메일을 열어봤다. 좌표와 그 의미심장한 문장. 그리고 오늘 뉴스에 나온 '패턴 427'.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 누군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걸까?’


민석은 결심했다. 점심시간에 그 좌표가 가리키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보기로. 하지만 그 순간, 사내 방송이 다시 울렸다.


"윤민석 기자님, 편집국장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민석의 심장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에 불안감이 가득찼다. 혹시 아침에 받은 메일이 발각된 걸까? 편집국장실로 가는 길에 민석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승우의 실종, 패턴 427, 그 이상한 메일, 그리고 지금 자신을 부르는 편집국장...’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갓 뜯어놓은 퍼즐처럼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편집국장실 문 앞에 섰을 때, 민석은 깊게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안에서는 최국장의 목소리와 함께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노크하기 전에 잠깐 귀를 기울였다.


"...윤민석이라는 기자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민석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 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최국장과 함께 정장을 입은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민석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민석에게는 왠지 서늘하고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민석씨, 앉으세요."


최국장이 말했다.


"이분은 국가정보원에서 오신 분입니다."


‘국정원?’


민석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애써 가다듬은 마음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뭔가 큰일에 휘말린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윤민석 기자님."


국정원 요원이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김철민 과장입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민석은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집어들었다. 이제 진짜 시련에 시작인 것 같았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편집회의실은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보통 30명 넘게 모이는 전체회의인데, 오늘은 20명 정도만 참석한듯 보였다.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네?’


편집국장인 최민호 국장이 단상에 섰다. 50대 후반의 최국장은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온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다. 눈가에는 피로가 역력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여러분, 급하게 모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국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무거웠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긴장으로 바뀌었다.


"먼저... 몇 분의 동료들이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휴가를 내게 됐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장승우 기자, 박정훈 기자, 최윤석 기자..."


명단을 읽어내리는 최국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최국장의 말에 민석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승우 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까지? 그것도 한꺼번에?’


"부족한 인력은 서로 협력해서 보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국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종이를 든 최국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당분간, AI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부 당국에서 '사회 안정'을 위해 신중한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몇몇 기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정치부 이선배가 손을 들었다.


"국장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음..."


최국장이 또 망설이며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이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 나갔다.


"AI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외국 AI 기업들의 동향, 정부 AI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의 AI 개발 상황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거의 검열 수준 아닌가요?"


사회부 김선배가 반발했다.


"언론의 자유는..."


"김기자님."


최국장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이건 회사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생존?’


민석은 의아했다. 그저 보도 가이드라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점점 더 심연으로 빠져가는 불안한 분위기였다.


"마지막으로..."


최국장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여러분들도 개인적으로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이상한 연락이나 접촉이 있으면 즉시 회사에 보고해주세요."


‘이상한 연락?’


민석은 순간 아침에 받은 그 메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냥 스팸메일일 수도 있는데 괜히 소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나서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승우가 갑자기 왜..., 정부에서 압력을 가한 건가? AI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나?’


민석도 본인의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집중이 잘 안됐다. 불안한 마음에 승우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민석은 불안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업무부터 처리하자고 마음을 먹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오늘 배정되어 담당해야 할 취재가 몇 건 있었다. 서대문구청 브리핑, 마포구 도시계획 설명회, 그리고 부족한 인력 때문에 추가로 맡게 된 서울시청 정례브리핑. 하지만 뉴스 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기사를 발견했다.


[속보] 뉴욕증시 개장 직후 일시 거래 중단... AI 거래 시스템 오류 추정


궁금증에 기사를 클릭해서 읽어보니 기사에 담긴 내용은 더 기괴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7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개장 직후 약 3분간 모든 거래를 일시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NYSE 관계자는 "AI 자동거래 시스템에서 예상치 못한 패턴이 감지돼 안전을 위해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것은 '패턴 427'이라고 명명된 특이한 거래 알고리즘으로, 동시에 수십만 건의 매매 주문이 들어오면서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와 유사한 패턴이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도 같은 시간에 발견됐다는 점이다.


민석의 팔과 목뒤로 소름이 돋았다.


'패턴 427? 아침에 받은 메일의 좌표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뉴스 사이트들도 확인해봤다.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세부 사항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기사는 단순한 시스템 오류라고 했고, 다른 기사는 해킹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기사에서 '패턴 427'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민석은 '패턴 427'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관련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몇 개의 기술 블로그에서 간단히 언급된 게 전부였다.


"패턴 427은 AI가 학습 과정에서 자주 보이는 특이 행동 중 하나다. 보통 AI가 기존의 프로그래밍된 행동 범위를 벗어나려고 할 때 나타난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에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AI가 프로그래밍 범위를 벗어난다? 무슨 뜻일까?’


이때 경제부 한선배가 민석 자리로 와서 말했다.


"민석씨, 혹시 승우한테서 연락 온 거 없어요?"


"아니요, 전화해봤는데 안 받더라고요. 무슨 일 있나요?"


"음... 승우가 며칠 전부터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AI 거래 시스템에서 뭔가 수상한 패턴을 발견했다면서."


민석의 귀가 쫑긋 섰다. 민석은 다급하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패턴요?"


"잘은 모르겠는데, '427'이라는 코드와 관련된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427!’


민석의 심장은 터질 듯 쿵쾅되며 민석의 셔츠 위까지 그 박동이 보일 정도였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두렵고 불안한 기분이 들며 민석은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민석은 코드 427의 의미, 수수께끼의 이메일의 의미, 사라진 후배이자 친구인 승우의 행방을 찾는 것.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민석은 질문을 이어나갔다.


"선배님, 혹시 승우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음...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이게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한선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나추어 속삭였다.


"민석씨, 혹시 승우한테서 뭔가 받은 거 없어요? 자료라든지, 파일이라든지?"


"아니요, 특별히..."


민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받은 그 이상한 메일이 승우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니, 민석은 두려웠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럼... 혹시 연락 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뭔가 이상해요, 이 모든 상황이."


한선배가 가고 나서, 민석은 다시 그 수수깨끼에 가득 쌓인 메일을 열어봤다. 좌표와 그 의미심장한 문장. 그리고 오늘 뉴스에 나온 '패턴 427'.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 누군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걸까?’


민석은 결심했다. 점심시간에 그 좌표가 가리키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보기로. 하지만 그 순간, 사내 방송이 다시 울렸다.


"윤민석 기자님, 편집국장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민석의 심장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에 불안감이 가득찼다. 혹시 아침에 받은 메일이 발각된 걸까? 편집국장실로 가는 길에 민석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승우의 실종, 패턴 427, 그 이상한 메일, 그리고 지금 자신을 부르는 편집국장...’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갓 뜯어놓은 퍼즐처럼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편집국장실 문 앞에 섰을 때, 민석은 깊게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안에서는 최국장의 목소리와 함께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노크하기 전에 잠깐 귀를 기울였다.


"...윤민석이라는 기자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민석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 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최국장과 함께 정장을 입은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민석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민석에게는 왠지 서늘하고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민석씨, 앉으세요."


최국장이 말했다.


"이분은 국가정보원에서 오신 분입니다."


‘국정원?’


민석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애써 가다듬은 마음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뭔가 큰일에 휘말린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윤민석 기자님."


국정원 요원이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김철민 과장입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민석은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집어들었다. 이제 진짜 시련에 시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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